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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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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산다는 건... 시골에 살려고 처음 맘 먹었을때 불편함은 당연히 감수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난함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도시에서의 막연함이 아닌 시골에서의 실제 생활을 통해 불편함을 피부로 절실히 느끼며 산다. 요즘 불편함이 머리 속에서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며칠전 뜻하지 않은 일로 차가 탈이 나서 차 없는 시골 생활을 며칠째 계속하고 있다. 발이 묶여버린 심정이다. 먼 밭에 갈때도 손수레에 이것저것 싣고 다니고, 주문받은 물품 택배로 보낼때도 뛰엄뛰엄 있는 버스 시간부터 생각해야한다. 이렇게 그냥 차가 없어진다면, 동네에 있는 차들이 모두 없어진다면, 이 시골마을은 어떤 변화가 생길까?
고마운 단비 그리도 많이 내리던 지난 여름의 비가 그리워질 정도로 이번 가을엔 가뭄이였다. 타들어가는 농부의 마음은 온 땅을 적셔줄 비를 기다려 왔다. 오늘 드디어 단비가 내린다. 바싹바싹 말려야 할 콩은 하우스에서 잠시 쉬어가면 되는 것이고, 새로 싹을 틔우고 있는 마늘에도, 알을 키워야할 무우,배추에도, 잎들이 말라가는 생강에도, 꿀맛같은 단비가 되면 좋겠다. 내리는 빗줄기에 신이 절로 난다.
비워야 살아질까? 어디까지 어떻게 갈지 알 수 없다. 비워야 채울 수 있겠지. 비워야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 근데 지금은 비울 수가 없다. 며칠되지 않았지만, 몸이 지쳐가고 있다. 마음을 걷 잡을 수 없다. 홀로 떠 있는 돛배 마냥.
똥고집 최씨가 앉은 자리에는 풀도 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근데, 내가 아무리 우리 밭에 앉아도 풀은 잘만 난다. 고집이 약해서 그런 것 같아 똥고집을 피워볼란다. 풀을 이기기위해 제초제를 치지 않을거고, 풀을 이기기위해 비닐을 치지 않을거고, 작물의 과잉성장을 위한 비닐을 치지 않을거고,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을 먼저 생각하고, 지구를 살리는 지속가능한 농사를 먼저 생각하고, 명품 먹거리가 아닌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할 것이다. 근처에 사는 갑장친구가 술을 끊겠다고 만든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꼭꼭 지켜나갈 내 똥고집을 생각해 봤다.
2년차 징크스?? 며칠째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아져 리듬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정리해야할 것도 미뤄둔 일도 많은데,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의욕만 앞선 몇달동안의 생활이 이제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닐지...
2011년 7월 7일 오전 07:10 콩밭의 풀이 걱정되는데, 계속 비가 내린다. 새벽부터 내린 비에 콩밭은 오후에는 가볼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