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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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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펴고 하늘을 보니...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위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논과 밭의 풀을 맨다. 그래도 짧게 짧게 시간을 내어 이일 저일하다보면 얼굴은 빨갛게 익고 온 몸은 땀으로 샤워한 듯 하다. 선선할때 집을 나서 다 하지 못했던 일을 하기위해 이른 저녁을 챙겨 먹고 나선다. 해는 서산을 넘어 가고 강렬했던 햇빛대신 선선한 바람이 좋은 저녁. 열심히 풀을 매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리 펴고 고개들어 바라본 하늘이 참 예쁘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지금을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 만큼 행복한 것은 없을것 같다.
빗소리 차분하게 비 내리는 새벽. 땅바닥과 부딪히는 소리가 반갑다. 비를 기다리던 농부의 마음을 울리는 빗소리다. 넉넉히 내려 땅과 곡식들이 잘 어우러지고 농부들도 쉬어가자.
가을 그 뜨거웠던 열기가 어느순간 급하게 식어버리고, 이제 가을이다 싶다. 비 그치고 하늘에 큰 포물선을 그린 무지개. 오랜만에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폈다. 해지는 저녁하늘이 이색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가을이 왔다.
논이 있어 좋다 요즘 아침 저녁으로 논에 나가 본다. 논이 있어 참 좋다. 그저 의무감이 아니라 잠시나마 내 마음을 달래보는 시간이 된다. 이른 아침 이슬 머금은 모들과 거미줄들을 보며 상쾌함을 느끼고, 해질무렵 조용한 호수에 와 서 있는 듯한 차분한 느낌이 든다. 혼자서 오롯이 산책하듯 두렁과 두렁을 도랑을 넘어다니며 논을 둘러 본다. 논두렁을 걸으며 논 속의 생물들의 분주함도 보고, 뿌리내려 진한 초록의 모들을 손으로 만져보며 한마디 던져본다. '이렇게 잘 크고 있구나. 기특하다.' 논이 있어 참 좋다.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그래서 참 좋다.
착한 농사 착한 농사란 무엇일까? 몇년 농사 짓지도 않은 아직 모자란 농사꾼이 갑자기 드는 생각이다. 뭘까? 착한농사란... 소비자들은 유기농이라고 하면 아직도 금이야 옥이야 하는 경향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유기농이 착한 농사일까? 생산자 입장에서는 잘 팔려서 돈 많이 벌어주는 것이 착한 농사일까? 내가 생각하는 착한 농사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알아야 착한 농사가 된다 생각한다. 내가 키운 것이 어떤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지 알고, 내가 먹는 이 농산물이 어떤 농부의 손길로 자라났는지 아는 그런 농사가 착한 농사라 생각한다. 거창하게 유기농이네 자연농법이네 다 필요없지 싶다.
일각수(一角獸) 요즘 12시(정오)와 오후 5시가 되면 온 세상이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늘 조용했던 시골 마을이 몇 년전부터 시끄러워졌다. 그 시작은 하천공사가 시작되고 나서 부터다. 큰 덤프트럭이 하루에 몇십대씩 돌아다니고, 큰 차에 실린 것을 뿌려놓으면서 내는 굉음과 뿔 한개 달린 괴물(일각수)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굴삭기의 다양한 작업들로 인해서이다. 거기다 요즘은 공사용 돌깨는 기계까지 등장하여 하루 종일 무서운 소음에 시달린다. 이 소음이 멈춰지는 시간이 점심시간인 12시부터 한시간, 퇴근시간인 오후 5시 이후인데, 이 시간이 되면 참으로 평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전의 그 평화로움이 참 고마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실린 글 중에 한 노스님이 일각수(一角獸) 얘길 하시면서 머지않..
생각의 차이 귀농을 준비하고, 귀농을 실행하고, 귀농해서 농사를 지으며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농사 지어보지 못한 나는 좀 천천히 가자고 한다. 농부의 딸로 자란 아이 엄마는 끊임없이 보이는 시골 일에 하루가 짧다고 한다. 귀농한 나를 보고 남자들의 공통적인 한마디...남자의 로망이란다. 귀농한 우리가족을 보고 주부들의 공통적인 한마디...힘들지 않냐고 한다. 난 전업농으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 허나 시골 일을 보는 눈이 아직은 많이 모자란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여전히 옆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성이 차지 않는 듯 하다. 귀농 초기 가졌던 원칙들은 아직 지켜내고 있다. 생각의 차이가 조금씩 좁혀져서 같은 길을 가는 좋은 동무가 되는 시간이 빨리 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
눈부신 햇살 오늘 모처럼 눈부신 푸른 하늘을 봤다. 장마뒤의 뜨거운 햇살이 뜨겁기도 하지만 반갑기도 하다. 밭에서 풀 매며 엄청 땀흘려 본다.